전시 안내

 

손종욱

이 : 굉장히 오랜만이다. 몇 년 만에 보는 건지 모르겠다.
손 : 삼 년쯤 된 것 같다.
이 : 지난번엔 서울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새 제주로 복귀했다고 해서 놀랐다.
손 : 2월에 복귀하자마자 바로 복학 신청을 해서 다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지금은 2학년이다.
이 : 아직 졸업까지는 한참 남았다.
손 : 휴학을 삼 년 했으니까.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 지금은 마음 다잡고 다니는 중이다. 동시에 〈브루클린〉이라는 공간에서 매니저도 병행하고 있다. 주말에는 작업도 하고 있고.
이 : 작업 이야기를 좀 더 해달라.
손 : 틀은 똑같다. 상상을 통해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는 구조. 대신 재료에 변화를 주고 있다. 서울에서는 아크릴 물감에 에어브러시를 사용했다면 지금은 에어브러시와 함께 유화 물감을 쓰고 있다.
이 : 차이가 큰가?
손 : 아크릴 물감은 어떻게 보면 얹는 거라 부드럽게 넘어가진 않는다. 그런데 유화 같은 경우는 섞이면서 색깔이 나오는 거라 에어브러시가 주는 부드러움과 유화의 부드러움이 같이 어우러진다. 조형도 열심히 하고 있다. 갖고 노는 걸 원체 좋아하다 보니. 아이소핑크를 사용해 열선으로 조각하는 작업이다. 위인들을 만드는 거지.
이 : 위인?
손 : 이를테면 팀 버튼 같은 사람들.
이 : 아아.
손 : 내가 갖고 싶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재미있게 만들어서 그 위에 에어브러시로 칠도 하고. 이것저것 작업하고 있다.
Q1. 작가님의 작가노트를 보면 유년기의 특성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첨예한 시각이 엿보입니다. 그렇다면 문득 궁금해집니다. 어린이의 세계는 작가님에게 '상상으로 바라보는 놀이터'에 더 가까운가요, 혹은 작가님의 작업세계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주제'에 가까운가요?
A1. 상상으로 바라보는 놀이터에 가깝다.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그리는 이유를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가지고 싶었지만 금전적인 이유나 품절 등의 상황 때문에 구하지 못했던 답답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 가지기 위해 무엇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그려서 걸어놔야겠다’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어린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위해 장난감 마트에 가서 장난감을 사는 거라면, 나는 장난감을 내 방에 전시하고 싶어서 그리는 것이다.
이 : 사지 못한 답답함 때문에 그려서 걸어놓는다는 게 진짜 특이하다. 만약 내가 가지고 싶은 게 생겼는데 갖지 못한다고 가정해 보면, 그림으로 그리는 순간 더 애탈 것 같은데.
손 : 내가 풀 소유자라 그렇다.
이 : 풀 소유자?
손 : 나는 갖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욕심이 많다고 해야 할까. 근데 돈이 없어서 못 갖는 경우도 있으니까. 아니면 한정되어 못 가질 수도 있고. 그럴 때 나는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 걸어둔다.
이 : ‘어차피 못 가질 거 걸어두기라도 할래’ 같은 건가.
손 : 근데 난 비슷한 걸 그려서 걸어두는 타입은 또 아니다. 복제해서 그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비슷한 스타일을 창조해서 걸어둔다. 진전이다. 진행이고.
이 : 그럼 갖고 싶은 욕구가 좀 해소가 되나?
손 : 근데 어찌 보면 뭘 갖는다는 것은 자랑하는 거랑 비슷하니까. 나만 보기 아까운 것을 남에게 보여주면 되게 기분이 좋은 것처럼. 그래서 만들면 바로 SNS에 올려서 사람들 반응을 보며 만족한다.
이 : 만약 그려놓고 SNS에 안 올리고 혼자 보고 있으면 해소가 별로 안 되나?
손 : 조금 덜 하지.
이 : 변형시킨 작품을 보여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 같다. 거기서 오는 해소가 있고.
손 : 바로 그거다.
Q2. 2022년, 작업이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2. 이때는 군대를 갔다. 정해진 규칙 속에서 살아야 하는 환경에 놓이니 쉬는 시간에는 무조건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특히 드로잉을 많이 했는데, 그냥 보고 그리는 드로잉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이나 장면을 상상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보통 노트를 3개 정도로 나눠 놨는데, 하나는 상상한 드로잉을 배경까지 완벽하게 완성하는 드로잉 노트, 하나는 그냥 낙서용, 하나는 군대에서 보이는 풍경을 그리는 용도로 나눠 놨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됐고, 완성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리고 드로잉 실력도 늘려 나갔던 시기다.
이 : 노트를 3개로 분리한 게 인상 깊다. 완성작과 낙서용의 기준도 궁금했고, 낙서를 하다가 괜찮은 것을 발탁해서 완성작으로 옮기는 건지도 궁금했다. 노트와 얽힌 스토리가 따로 있나.
하단 이미지 : 손종욱 작가의 노트. ⓒ손종욱.
손 : 완성작 노트 같은 경우는 일병 말, 2022년도부터 시작한 작업이다. 시간이 좀 더 많아지다 보니 점점 디테일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이 : 이 자체가 작품집이다. 퀄리티가 엄청나다.
손 : 맨날 10시 반에 취침하러 안 가고 싸지방(컴퓨터실)에 가서 유튜브를 들으면서 낙서를 했다.
이 : 이게 다 백 퍼센트 창작이라니. 안 믿긴다.
손 : 물론 전부 창작이다.
이 : 작업 하나당 며칠씩 걸렸나.
손 : 시간 날 때마다 계속 그렸어서 정확한 기간은 모르겠다.
이 : 낙서용 노트도 결코 낙서의 퀄리티가 아니다.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고. 특유의 화풍도 전부 살아있다. 이거 참, 사인받고 싶을 정도인데.
손 : 나 같은 경우는 좋아하는 스타일이 너무 많다.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고. 근데 이게 정리가 안 되면 사람들이 혼돈할 것 같았다.
이 : 보는 이로 하여금 구분하지 못할 것 같은?
손 : 맞다. 왜냐하면 나는 미국 만화책도 좋아하고 만드는 것도 좋아하는데, 인스타 피드로 예를 들면 뭔가 깔끔하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셈이다. 전부 다양하고 그러니까.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면 정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노트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 : 노트를 보면 볼수록 이것저것을 굉장히 많이 시도한 흔적이 보인다. 화풍은 비슷한데 도구가 계속 바뀐다.
손 : 물감도 써보고 색연필도 써보고… 다 한 번씩은 해봤다.
이 : 어떤 걸 찍어가야 할지 고민이 든다. 사실 그냥 전부 다 담아가고 싶다.
이 : 올해로 스물 넷인가.
손 : 그렇다.
이 : 나한테 있어 스물 넷은 아직 한참 어린 나이인데 종욱 작가는 벌써 작가적 마인드가 다 탑재되어 있어 놀랐다. 개인적인 기억을 그리기도 바쁜 나이에 그림을 통해 관객에게 의도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이 굉장히 명확하다. 이런 마인드가 탑재되게 된 계기가 있나.
손 : 자꾸 인스타그램으로 예시를 들게 되는 것 같은데.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 한 번은 옛날 동심으로 돌아갔을 때의 추억을 그려주는 채널을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옛날 일화는 브라운관 TV와 관련된 기억이거든. 초등학교 때는 엄마가 TV를 보지 말라고 했었다. 그런데도 몰래 봤다. 몰래 보면 뒷부분이 뜨거워지니까 그 위에 얼음을 올려두고서.
이 : 고장 날 것 같은데.
손 : 고장 났지. 그래도 그때 본 투니버스며 카툰 네트워크, 니켈로디언이 난 너무 좋았다. 근데 지금은 그게 다 없으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이걸 작품으로 만든다면 그 당시 내가 보던 브라운관 TV를 그대로 두고 그때 상영했던 만화 프로그램들을 다 나오게 하고 싶다고. 그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면 내 나이 또래들은 추억에 잠길 수도 있지 않나.
이 : 아무래도 똑같은 시대를 공유한 게 있으니까.
손 : 내 모든 작품을 볼 때는 그때의 과거나 동심을 좀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마치 TV를 보듯이.
이 : 근데 아까 전에 카툰 네트워크랑 니켈로디언을 언급했는데, 사실 나는 완전 투니버스파다. 그래서 종욱 작가가 파란 눈까지 그릴 정도로 미국 캐릭터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렸을 때부터 확립된 취향인가.
손 : 완전 어릴 때부터 확립된 취향이다. 미국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니켈로디언 시트콤 중에 〈아이칼리〉라는 시트콤도 있었는데 그것도 무척 재밌게 봤다. 그런 걸 보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켈로디언 시트콤 〈아이칼리〉 출처 : 니켈로디언
이 : 약간 선망의 대상 같은 느낌이다.
손 : 어렸을 때부터 카툰 네트워크, 니켈로디언 같은 것들을 많이 봤더니 그쪽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든 게 있다.
이 : 나도 아주 가끔 유튜브에 텔레토비를 쳐서 본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보는 것은 아니고 그냥 불쑥 생각이 나면 찾아보곤 하는 거다. 종욱 작가도 사라져 버린 것들이지만 구태여 찾아서 들여다볼 때가 있나.
손 : 당연히 본다. 〈브루클린〉에서는 밤이면 벽에 핑크팬더나 닌자 거북이 같은 애니메이션을 트는데 일하다가 손님이 없으면 마냥 보기도 한다. 아니면 컴퓨터로 틀기도 하고. 항상 보는 것 같다. 옛날 기분을 계속 살리고 싶다.
이 : 향수가 확실히 있나보다. 근데 또 지금 보는 건 옛날의 그 감성과는 다르지 않나?
손 : 완전 다르다.
이 : 아까 예시 든 텔레토비만 해도 옛날엔 마냥 빠져서 봤던 것 같은데 지금 보면 화질부터 보인다. 그럴 때면 어른이 됐다는 것에 좀 씁쓸하기도 하다.
손 : 너무 크게 와닿는다. 어렸을 때 난 정말 장난감을 잘 갖고 놀았다. 지금 생각해도 스토리가 기가 막히다 싶을 정도로. ‘이렇게 스토리를 잘 짜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을 멈췄다. 자라기도 했고, 솔직히 장난감 갖고 노는 성인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적으니까.
이 : 타인의 시선을 계속 체크하는구나.
손 :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는 핸드폰 같은 게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TV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나오면 거기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다 TV 뜨거워지면 또 얼음 올리고. 그런데 지금은 해야 할 것도, 책임져야 할 것도 너무 많으니까 거기에 쏟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이 : 자연스럽게. 손 :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지금 느낄 수 없는 건 당연한데 다시 그 느낌을 살리고 싶다. 이 :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재현하고 싶은가 보다. 손 : 그때를 떠올리면 머리가 굉장히 시원했다. 뇌가 시원했다고 표현하면 될까? 무엇이든 다 습득할 수 있는 상태.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안개가 엄청 낀 느낌이다. 이 : 애초에 오롯이 빠져들 수 있는 시간도 없거니와 어른이 되면 현실의 노이즈가 추가될 수밖에 없다. 손 : 난 겨울을 싫어하는데 그럼에도 좋아하는 이유가 머리가 좀 차가워야 받아들일 때 잘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든다. 유년기에는 쭉 머리가 시원한 상태라 잘 받아들여지는 게 분명히 있었다.
이 : 이건 고정 질문인데. 종욱 작가는 제주에서 작업을 하다 서울로 올라간 케이스 아닌가. 서울과 제주는 다른가? 신촌에서 배운 걸 어떻게 다시 제주에 녹여내고 있는지, 과정이 궁금하다. 손 : 사실 난 어떻게 보면 제주도 토박이는 아니긴 하다. 이 : 오, 몰랐던 사실이다. 손 : 인천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쭉 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제주로 내려왔다. 중고등학교를 제주에서 보내긴 했지. 군대 전역한 후에는 서울에서 자취를 했다. 이 : 배운 것들이 꽤 있었을 것 같다. 손 : 너무 많은 걸 배웠다. 사실 제주도는 너무 편안해서 동력이 서울처럼 강하지 않다. 본가가 제주에 있기도 하고 문화 생활할 것도 많이 있는 게 아니니까. 서울은 경쟁이 기본인데. 자기가 돋보였으면 좋겠는 마음. 그런 것들로 촉발된 자기 관리나 작업 패턴 등이 내면적으로 발휘되면서 감각도 함께 늘어난다. 이 : 타인을 계속 신경 써야 하는 곳이라 자기 관리를 하고, 그 자기 관리에서 결국 내면의 성장까지 이어지나 보다. 손 : 그렇다. 어떻게 보면 지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평화로운 상황에서 멈춰있는 것보다 경쟁 구도 속에서 발전하는 게 낫다. 이 : 나도 동의한다. 손 : 서울에선 기본적으로 헝그리 정신이었다. 만약 지인들이 전시를 활발하게 한다? 그러면 화가 났다. ‘난 뭐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이 자꾸 드니까. 이런 생각들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던 찰나에 문득 장난감을 주목하게 된 거다. 이 : 오, 지금의 주제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손 : 불현 듯 나는 장난감을 좋아하니까 어린아이의 동심을 주제로 작업을 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이 : 내가 종욱 작가의 노트를 읽으면서 계속 들던 의문이 해소가 된다. 종욱 작가는 그냥 ‘좋아해서’ 계속 이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다 했지만 나는 아무리 봐도 작가적인 고민으로 확실히 방향을 잡았다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거든. 근데 이제 흐름이 읽힌다. 손 : 이쪽으로 생각이 정리되니 계속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 전시도 크진 않아도 계속해보고, 팝업도 했었다. 좋은 기회가 많이 주어지기도 했다. 이 : 그럼 종욱 작가의 ‘장난감’은 물리적 장난감만을 뜻하는 게 아니겠다. 동심과 문화를 전부 포괄하는 상징적 쓰임의 단어로 파악된다. 손 : 그렇다. 내가 사용하는 ‘장난감’이라는 언어는 결국 갖고 놀 수 있는 것을 아울러 상징하는 말인 셈이다. 말도 어쩌면 갖고 놀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고, 영상도 그렇다. 그림도 그렇지. 이 모든 걸 합쳐서 장난감이라고 부른다.
손종욱 작가가 어렸을 때 만들었던 장난감들. ⓒ손종욱.
손 : 어릴 때 만든 장난감들이 있다. 당시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팀 버튼 전시를 했는데 어린 나이에 충격이 컸다. 그때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이건 아이언맨 장갑이다. 이 : 이게 몇 살 때 작업한 거라고 했지? 손 : 아마 초등학교 4학년에서 6학년? 그즈음일 거다. 이 : 초등학교 때 이렇게 재료의 물성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은데. 손 : 당시에 스톱모션을 많이 봤어서 스톱모션 작업도 자주 했다. 이 : 보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영향을 받으면 즉시 작업물로 나오는 타입이구나. 손 : 바로 작업에 옮기는 편이다. 이 때는 남는 파츠를 사용해 뼈대를 만들었고 철사는 식물용 철사를 썼다. 알루미늄 호일로 다리 부분을 감쌌다. 이 중에는 로봇에서 비행기로 변신할 수 있는 건담도 있다. 이 : 굉장하다. 인터뷰 내내 작업을 보는 재미가 커서 실물 작업을 좀 보고 싶은데 보여줄 수 있나. 손 : 물론이다.
어린이의 시각 2. ⓒ손종욱.
손 :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기 전에 먼저 이 작품부터 소개하려 한다. 이건 의뢰받은 작품인데. 플라스틱 판에 에어브러시로 작업한 작품이다. 눈을 마주치고 시작하자.
“Rox Boy”. ⓒ손종욱.
이 : 락스 보이! 사실 이건 내 주변인도 아는 작품이다. 크리틱 할 때 옆에 지인 한 명이 같이 있었거든. 근데 락스 보이 설명을 듣고 너무 매력적이라고 느꼈는지 전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락스 보이 이야기를 꺼낸다.
손 : 락스 보이는 내 명작이니까. 밈을 보는데 사람들이 계속 락스를 먹고 싶어 하는 거다. 그래서 락스 먹여주는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련된 스토리도 있는데, 컷 만화다.
이 : 너무 궁금하다. 보여달라.
“Rox Boy”. ⓒ손종욱.
[Rox Boy Story]
#1. 뽀뽀를 하려던 순간, 뾰족한 코 때문에 여자친구가 병원에 실려간 소년. 눈물 흘리는 그에게 락스 보이는 말한다. "그럴 땐, 락스를 마셔봐."
#2. 혼자인 게 서러운 어느 날. 울고 있는 솔로에게 다가오는 락스 보이. "울지 말고, 락스를 마셔."
#3. 데이비드 호크니를 천사로 만들어버린 락스 보이! 현상수배범이 되는데…
#4. 수배된 락스 보이를 향해 경찰이 출동한다. 결국 고담 형사가 몸을 던져 그를 붙잡는 데 성공하지만… 통에서 쏟아진 락스로 주변이 전멸. 당황한 고담 형사에게 락스 보이는 담담하게 말한다. "형사님도 그냥… 락스를 마시세요."
#5. 자기 현상금을 찾겠다며 은행에 직접 나타난 락스 보이. 마침 은행 강도가 들이닥치자, 그는 ‘락스 로봇’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플라스틱 통은 총알 한 방에 뚫려버리고, 그 뒤엔…
THE END
손 : 저 표정도 미국의 유명한 에이드 캐릭터 ‘쿨 에이드’에서 따온 거다.
이 : 너무 매력적인데.
손 : 락스 보이는 모두가 다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Jelly man”. ⓒ손종욱.
이 : 젤리맨에 대한 설명도 듣고 싶다.
손 : 아까도 언급했지만 나는 장난감을 갖고 싶은데 못 가지면 직접 만든다. 그중 하나다. 어릴 때는 장난감을 많이 갖고 놀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가지고 놀지 않으니까. 장난감들은 퀴퀴한 먼지가 쌓인 채로 장식장 안에 전시되는 거다. 이럴 바에는 그림으로 그려도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이 : 어차피 안 갖고 노는 거, 평면으로 해도 된다는 건가.
손 : 맞다. 그래서 패키지까지도 전부 직접 제작했다.
이 : 사진으로 볼 땐 단순한 평면 같은데 실제로 보니 패키지도 몹시 리얼하다.
“Human milk” ⓒ손종욱.
손 : 휴먼 밀크는 서울에 살았을 때 처음으로 크게 그렸던 작품이다. 이 아이도 우연히 들어간 장난감 샵에서 찾은 장난감이다.
이 : 이 소년이 장난감이라고? 사람인 줄 알았다.
손 : 커다란 안경을 썼다. 어릴 땐 어른이 되고 싶어서 안경을 고집부려서 쓰기도 하니까.
이 : 쓰면 오히려 눈이 나빠지는데 그때는 멋모르고 꼭 우긴다.
손 :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들을 표현한 작품이다. 어른들이 “우유 마셔야지 키 큰다”라고 말하는 것에 영향을 받았는데, 사실 작품 속 우유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자세히 보면 우유 곽에 비타민이 없다고 적혀있다. 호포사피엔스라고도 적혀있고.
이 : 그렇네! 정말 효과 없는 우유다.
손 : 뒷배경이 물인 것도 어린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에 효능도 없는데 우유를 더 많이 마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만의 세계. ⓒ손종욱.
이 : 나만의 세계! 노트를 읽으면서 가장 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던 작품이다.
손 : 나만의 세계는 서울에 살 때 작업실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그린 작업이다.
이 : 이렇게 큰 사이즈를 화장실에서?
손 : 당시 살던 집이 불법 건축물이기도 했고 북향에 방음도 안 되어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화장실 밖에 없었다. 헝그리 정신인 거지.
손 : 그림에 대해 더 설명을 이어가 보면 서울에 살 때 〈프라이탁〉 매장에서 일했었는데 외관이 통유리라 밖이 다 보인다. 근데 그 앞에서 어떤 외국인 남자아이가 바닥에 누워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다. 그 모습을 보는데 낭만 미쳤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 아이가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뭐 숙제를 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일기를 쓴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마냥 그림을 그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 나는 저 아이가 종욱 작가 본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아이가 그리고 있는 걸 작가가 상상하는 그림이구나.
손 : 맨 처음엔 노트에 확실한 형태로 그림을 그렸는데 확고해질수록 재미가 없었다. 이 아이가 그린 걸 궁금해하고 끝내고 싶은데. 그래서 흰색으로 한 번 싹 덮었다. 덮었더니 밑그림이 희미하게 올라오는 거다. 이건 상상한 걸로 살짝 남기고 그 위는 이제 보는 사람들이 덮도록 유도했다.
이 : 진짜 재밌다. 작가노트만 읽었을 땐 작가의 어렸을 때 이야기인 줄 알고 자전적 작품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완전히 상상으로 풀어낸 또 다른 스토리다.
“Tommy. what are you looking at?”. ⓒ손종욱.
손 : 이건 서울에 처음 왔을 때 그렸던 작품이다. 몸체는 기존에 원래 있었던 장난감이고 머리 부분은 상상해서 만들었다.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장난감을 만들고 싶어서 요소들을 섞은 거다. 원래는 배경이 하나도 없었다. 근데 어렸을 때 장난감을 갖고 놀던 걸 생각 해보면 말도 안 되는 배경이 참 많지 않나. 구름 위에 있거나, 성 안에 있다거나. 그런 말도 안 되는 배경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손 : 그리고 이 친구의 시선을 잘 따라가 보면 관객을 바라본다. 시선을 보고 제목을 보면 뭔가 떠오르지 않나? Tommy는 내 영어 이름이다.
이 : 말을 거는 거구나!
손 : 맞다. ‘넌 뭘 보고 있어?’라고 말을 거는 거다.
이 : 난 이 캐릭터 이름이 Tommy인 줄 알았는데. 흥미롭다.
SONGIS PUPPY BOX. ⓒ손종욱.
이 : 마지막으로 〈SONGIS PUPPY BOX〉에 관한 설명을 듣고 인터뷰를 마무리할까 한다.
손 : 좋다. 이 작품은 ‘퍼피체어’를 네모나게 변형한 작품이다. 마지스의 퍼피체어는 동글동글한 쉐입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그걸 네모나게 변형했다. 변형은 어릴 때부터 쭉 해왔던 것이기도 하니. 근데 이게 또 막상 그려보니까 나중엔 또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이 : 평면을 넘어서.
손 : 나만의 것들을 계속 만들고 싶은 욕구다.
이 : 종욱 작가의 작품 설명을 쭉 들으면서 느끼는 점은 본인 스타일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은 다들 할지 몰라도 막상 실천은 잘하지 않는데, 종욱 작가는 그런 생각이 들면 바로 실천하고 작품으로 만든다. 실행력이 엄청나다 해야하나.
손 : 뭐라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저변에 있기도 하고, 이땐 뭔가 생각나면 바로 하는 것도 가능했던 때라서. 제주도는 너무 평화롭다 보니 살짝 느슨해진 감이 있다.
이 : 진짜 거의 끝났다. 요즘 준비하고 있는 신작이 있으면 소개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손 : 지금 그리고 있는 신작이 있는데. 유화랑 에어브러시를 섞어 작업하고 있다. 콜로세움에서는 검사들이 관중에게 둘러싸여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지 않나. 승자는 패자의 목을 밟고 칼을 들이밀면서 관중을 바라보고, 관중은 죽이라고 엄지를 내리는 장면 같은 것. 이거랑 비슷하게 신작 속에서도 어린아이가 어른의 가면을 쓰고 엄지를 내리고 있다.
손 : 어린아이가 잔혹하게 처리한 캐릭터들을 자세히 보면 다 미국에서 가장 친근한 캐릭터들이다.
이 : 스토리텔링이 구체적이다. 작업하게 된 계기가 있나.
손 : 군대에 있을 때 훈육 예능을 본 적이 있다. 근데 그 광경이 내겐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오더라.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고. 근데 사실 어린아이들의 잘못된 성향은 다 어른들 책임이거든. 너무 모르기 때문에, 순수하기 때문에 더 잔인할 수 있는 거다.
이 : 어찌 보면 순수 악 같은 개념이다.
손 : 맞다. 그런 식으로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순수의 이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작품을 관람하기에 앞서 말해주고 싶은 포인트가 있나.
손 : 아까 작품을 소개하기 전에 〈어린이의 시각 2〉와 눈을 마주치라고 했던 것 기억나나.
이 : 기억난다.
손 : 그게 눈을 마주치고 시작을 하란 안내다. 파란 눈이라 살짝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아이들의 시선으로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나는 내 공간 안에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놓고 싶은 사람이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람들도 다 같이 좋아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돌아가서.
 
작가의 가장 매서운 무기는 열정이다.
애정을 발판으로 잉걸과도 같은 마음을 실천해 낼 때 - 작업은 비로소 밤을 켜는 빛이 되기에, 낮의 군중을 모을 힘이 생긴다. 손종욱 작가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새로움으로 뻗어나가는 작가다. 그의 당당한 태도는 그 기반이 이러한 열정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리라.
손종욱의 작품은 재미있다. 그가 동심에 빠진 것처럼 초면의 관객들도 그의 작품을 보면 아마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것이다. 수많은 작업량이 말해주듯 연구하고 골몰해 온 시간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스토리로 새겨졌다. 그럼에도 모든 것은 무겁지 않다. 경쾌하고 깔끔하다.
파란 눈과 마주한 뒤 〈브루클린〉을 빠져나오며, 나는 그의 세계를 거꾸로 걷는 느낌을 받았다. 미래를 향해 끝없이 달려 나가는 그의 어린 시절을 한없이 들었기 때문일까. 전시장에서 마주할 파란 눈이 벌써부터 간절히 기다려졌다.
손종욱 작가.
* 2025. 05. 30 제주 손종욱 작가와의 인터뷰

어린이의 시각 2

2024, 캔버스에 아크릴, 59.8×20cm. ⓒ손종욱.

어린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순수한 시점을 표현한다. 작품은 어린이의 눈을 클로즈업하여, 그들이 경험하는 순수한 호기심과 감정의 깊이를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는 자주 사소한 것들을 간과하지만, 어린이들은 그 속에서 경이로움을 찾는다. 그런 어린이의 시각을 부러워하는 감정을 한편으로 표현한다.

“Tommy. what are you looking at?”

2024, 캔버스에 아크릴, 30×30cm. ⓒ손종욱.

어린이의 독특한 시각을 통해 장난감을 새롭게 조명한다. 어린이가 상상하는 배경을 나의 해석으로 구성하여, 그들의 순수한 시선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장난감과 배경의 조화는 어린이의 상상력과 감성을 담아내며, 관객에게 비현실적인 즐거움을 준다.

“Human milk”

2024, 캔버스에 아크릴, 91.8×72.8cm. ⓒ손종욱.

장난감 안경을 꺼내 쓴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며 어린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알려진 우유를 권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그림으로 표현했다.

“Jelly man”

2024, 캔버스에 아크릴, 35×35cm. ⓒ손종욱.

어린 시절 우리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이야기를 만들고, 효과음을 직접 입으로 내며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연출을 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에는 그러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에도 아직 장난감을 좋아하지만 가지고 놀지는 않는다. 그저 공간을 채우고, 꾸미는 용도로 만족한다. 그래서 진짜 토이 대신 그림으로 대체해도 되겠다고 생각하여 작품을 제작했다.

“Rox Boy”

2024, 캔버스에 아크릴, 35×35cm. ⓒ손종욱.

밈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유머와 재미를 강조하여 제작됐다. 클로록스 제품을 캐릭터화하여 익살스럽고 기발한 시선을 통해 일상적인 사물을 새로운 캐릭터로 재구성했다. 이로써 관객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주며, 전통적인 미술과 현대 문화의 경계를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SONGIS PUPPY BOX

2024, 캔버스에 아크릴, 46×60.6cm. ⓒ손종욱.

강아지 모양의 둥근 의자를 모티브로 삼아, 이를 네모난 형태로 재구성함으로써 현실과 상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각적 즐거움을 전달하고자 했다. 작품 속 점선과 구조적인 형태는 어린 시절 장난감의 특징을 반영하면서도, 현대적이고 단순화된 시각 언어를 사용하여 감각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상상의 힘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만의 세계

2025, 캔버스에 아크릴, 100×72.7cm. ⓒ손종욱.

어린 시절의 창의적 놀이를 떠올리게 하며, 상상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한다. 아이가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그 상상이 실제로 펼쳐지는 듯한 모습을 콜라주와 드로잉으로 표현했다. 노트 속의 단순한 선과 형상은 마치 도시와 탈것이 꿈틀대며 생명을 얻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어린 시절 우리가 종이 위에 그리던 단순한 스케치가 마음속에서 거대한 세계로 확장되던 경험을 떠오르게 한다. 밝고 대조적인 색감과 다양한 질감은 상상 속 세계가 가진 생동감을 극대화시킨다.